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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정의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조선 후기에 실학 사상을 체계적으로 완성한 실학자이자 개혁사상가, 정치가, 과학자예요.

 

 

내용

 

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는 정약용의 학문적 재능과 실용적인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그를 신뢰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정약용은 정조의 다양한 개혁과 정책 실행에 깊이 관여할 수 있었지요. 정약용은 백성을 위한 정치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과 건축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오랜 유배 생활 동안 수백 권의 책을 썼어요.


1. 정약용의 발명품

거중기: 정약용은 정조의 명령을 받아 성을 쌓는 공사에 참여하며 과학적 방법을 도입했어요. 당시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을 현재의 수원으로 옮기고자 했고, 이를 위해 국력을 동원하여 수원에 새로운 성을 쌓는 대대적인 계획을 세웠어요. 정약용은 이 공사에서 벽돌을 쌓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을 연구했고, 무거운 돌을 들고 옮기는 데 필요한 장치인 거중기를 발명했어요. 이로 인해 공사 기간도 단축되고 공사비도 줄일 수 있었어요. 이러한 공학적 발명품은 수원화성 축조에 혁신을 가져오며, 조선 시대의 건축 기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어요.


배다리(주교):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으로 옮긴 이후 매년 한 차례 이상 화성에 갔어요. 가장 큰 어려움이 대규모 인원이 한강을 건너는 것이었지요. 1795년에 정조는 화성에서 거행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61세 생일 잔치)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화성 행차를 계획했어요. 이때 정조는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는 행차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배다리를 건설하라고 신하들에게 지시했어요. 정조의 명령을 받은 정약용을 비롯한 여러 신하들과 이 배다리를 완성했어요. 한강에 배 80여 척을 연결한 뒤 그 위에 판자를 놓아서 임시다리인 배다리를 만들었어요. 정조 이전에도 배다리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하지만 배다리가 그림으로 그려진 것은 정조가 화성으로 행차할 때 한강을 건너기 위해 노량진에 설치한 배다리가 유일해요. 이러한 배다리의 모습은 화성에서 열린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행사를 기록한 의궤인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와 이를 8폭 병풍으로 그린 『화성능행도병(華城陵行圖屛)』에 실린 주교도(舟橋圖)에 상세히 남아 있어요. 이들은 당시에 제작된 배다리의 설계 방식과 모습을 기록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어요. 


2. 정약용의 저서

정약용은 새로운 학문인 실학뿐만 아니라 서학에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서학은 천주교 사상과 서양과학을 합쳐서 이르는 말이에요. 당시 양반들은 제사를 거부하고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천주교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어요. 이로 인해 그는 천주교 관련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공격을 받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약용의 관직 생활은 정조가 죽기 전까지는 탄탄대로였어요.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하자 정약용은 천주교 탄압 사건에 연루되어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어요. 그는 18년이라는 강진에서의 기나긴 유배 기간 동안 학문 연구에 매진했고, 자신의 실학적 학문을 완성시킬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어요. 정약용은 관직 생활과 오랜 유배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이라는 엄청난 양의 책을 썼어요. 


『목민심서』: 『목민심서』는 지방관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백성들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서예요. 지방관이 지방을 통치할 때 필요한 도덕적 규율, 행정 지침, 통치 방안, 통치 이념 등이 제시되어 있어요. 이 책에서 정약용은 지방관이 능력과 인격을 갖춰야 한다고 말해요. 특히 관리들이 청렴해야 한다며 아무리 작은 물건이어도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경세유표』: 『경세유표』는 조선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제도를 바꾸어야 하는지를 적어 놓은 책이에요. 이 책에서 정약용은 토지 문제를 개혁해야 하고, 도시와 상업을 발전시키고, 기술의 힘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실학자이자 관리로서 느낀 것을 총정리한 종합 개혁 안내서라고 할 수 있어요. 


『흠흠신서』: 『흠흠신서』는 재판을 하거나 형벌을 주는 상황에서 어떻게 공정하게 할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범죄와 관련된 책이에요. 형벌과 관련된 일은 사람의 생명에 관한 일이지만, 이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래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그 임무를 맡은 관리들이 유의할 점과 더불어 형벌 제도의 개선할 점을 적었어요. 


정약용은 유배 중에도 학문적 열정을 멈추지 않고, 실질적인 연구와 저술 활동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어요. 그의 발명품과 저서는 조선 후기 실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한국 전통 과학과 행정 개혁 사상의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어요. 이러한 이유로 정약용은 2012년에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었어요. 

 관련 이미지         

 

 

출처: <화성성역의궤 거중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출처: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시청

출처: <원행을묘정리의궤 주교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